“We all one day face major choices that will shape our lives. I seized two opportunities that marked decisive phases in this tremendous adventure.
Francis Holder
마이오(Mayot) 가(家)는 프랑스 북부 아르투아(Artois)지방 출신의 농민이었습니다.
샤를르만 마이오(Charlemagne Mayot)는 그의 아내와 함께 프랑스 북부도시 릴(Lille)과 가까운, 크르와(Croix)의 막켈르리(Markellerie)거리에 작은 베이커리를 개업합니다. 그리고 1908년, 그의 아들 에드몽 마이오(Edmond Mayot)는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샤를르만 마이오의 손녀이자 에드몽 마이오의 딸인 수잔 마이오는 줄리앙 홀더(Julien Holder)와 결혼합니다. 이들 부부는 릴(Lille)에 정착하게 되며 사라장(sarrazins)거리에 베이커리를 오픈합니다.
1953년부터 홀더 부부의 아들인 프랑시스 홀더(Francis Holder, 현 회장)는 부모님과 함께 베이커리 일을 시작합니다. 그는 릴의 스트라스부르그 광장에 위치한 베이커리 PAUL을 인수하고 PAUL의 상호명 그대로 베이커리 사업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프랑시스 홀더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가업이었던 베이커리를 릴에서 운영하게 되며, 사업도 확장시키게 됩니다. “우리는 흰 빵이 주류였던 그 당시, '비에누와 (viennois)' 라고 불리는 다양한 종류의 빵으로 베이커리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 빵들은 현재 PAUL의 모든 매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급빵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내 마트산업이 대형화 되면서부터 새로운 백화점들이 릴에 입점하게 되고, 프랑시스 홀더는 백화에 제품 납품을 제안하게 됩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홀더는 '물랑 블루(Moulin Bleu)'라는 이름의 작업실을 랑베르자르(Lambersart)에 오픈했으며, 막 개점을 시작한 오샹(Auchan)과 갤러리(Galeries), 그리고 모노프리(Monoprix)와 같은 대형마트에 빵을 납품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PAUL이 유통망을 확장하고 대형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되었습니다.
프랑시스 홀더는 릴의 근교 라 마들렌(La Madeleine)에 위치한 공업지역의 미개발지를 매입하여 대형마트공급에 필요한 첫 제조공장(현재 3곳)을 설립하게 됩니다. 현재, 이 공장에서는 빵, 비에누아즈리, , 파이, 케이크가 생산되고 있으며, 이 제품들은 프랑스 내 모노프리(Monoprix), 인터마르쉐(Intermarche), 샴피옹(Champion), 아딱(Atac) 등의 대형마트로 공급됩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프랑시스 홀더는 점점 더 그의 본업이었던 제빵사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물랑 블루 사업과 동시에, 그는 이 시기 다양한 사업적 변화를 시도하게 되는데, 릴 본점에 설치했던 나무화덕이 바로 그 예입니다. 나무화덕에서 빵이 구워지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작업실을 개방했던 그의 새로운 시도는 오늘날 PAUL의 성공을 가져다 준 발판이 되었습니다. [모든 제품은 엄격한 수공업 과정에 따르며 반죽, 점검, 가공, 준비, 장시간의 발효, 그리고 굽기로 완성된다]는 PAUL의 철학을 직접 보여주었던 시도였습니다. 이로써 PAUL은 뛰어난 품질과 맛, 이 두 가지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가게 됩니다.
릴에서 처음 시도된 이 나무화덕 컨셉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프랑스 내 쇼핑몰에 입점한 PAUL의 매장들을 통해 널리 확장되게 됩니다. 마침내 프랑시스 홀더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점점 더 늘려가기 시작했고, 해를 거듭하며 프랑스 전역에 PAUL의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PAUL의 성공을 불러온 두 번째 요인을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보증금이라는 것이 없어서, 프랜차이즈를 오픈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간단하고 돈도 적게 들었습니다. PAUL의 신규 매장을 오픈하기 위한 성공의 법칙은 첫 번째도 위치, 두 번째도 위치, 그리고 세 번째도 위치이지요!”
그 후 PAUL은 대형 쇼핑몰 내의 매장 오픈을 멈추지 않았고, 프랑시스 홀더와 그의 팀들은 여러 중심 도시와 파리, 그리고 주요 지방도시에서 최고의 자리만을 선별하여 PAUL을 확장시켜 나갑니다.
PAUL은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컨셉의 검은색 외관을 선보이게 됩니다. 또한, 같은 시기에 프랑시스 홀더는 제조 공정 중 하나인 곡물재배와 PAUL만의 독특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열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분업자들은 그의 시도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나는 내 빵이 전원적인 스타일의 다양한 품목들로 구성되기를 바라며, 잘 경작된 농지로부터 수확한 부드러운 겨울 밀로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껑 레미(Camp Remy) 밀은 일반곡식보다 생산량이 30% 가량 낮기 때문에, 농민이나 제분업자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선 우리가 그들의 손해를 보상해주어야 한다.”
이런 그의 철학을 따라, 현재는 300명이 넘는 프랑스 농민들이 오직 PAUL만을 위해, 4,000 헥타르 이상의 밀을 매우 까다로운 방법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프랑시스 홀더와 그의 팀원들은 빵의 조리법이나 서비스의 질은 물론, 매장 내부의 장식까지, 품질의 변함없는 유지를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주, PAUL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제빵사들과 함께 일하며 처음 빵을 만들었을 때의 초심과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프랑시스 홀더의 은퇴시기가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PAUL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PAUL의 전통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내 옆에 있는 아들들과 딸이 PAUL을 영원히 이어가기 위해 일하고 있다.